반응형

이방원아들들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요즘 KBS1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건국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시기를 그리고 있죠. 특히 누구보다 조선 건국에 앞장섰던 이방원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역사 인물들을 담았다 보니, 이에 궁금증을 갖고 계시는 분들 많을 텐데요. 이방원의 아들들에 대하여 정리해보았습니다.

 

 

이방원아들들, 조선 역사에서 어떻게 등장할까?

실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이방원 가계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인은 10명으로, 자녀는 12남 17녀를 낳았는데요.

태종의 가계도 표
두산백과 출처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성녕대군, 경녕군, 함녕군, 온녕군, 근녕군, 익녕군, 희령군, 후령군, 혜령군이 바로 이방원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익숙한 이름들도 몇몇 보이지요? 특히 충녕대군은 모두가 잘 알고 계시는 세종대왕이십니다.

 

 

◆ 태종 이방원이 처음 세자로 올린 아들은 세종대왕이 아니다.

태종 이방원이 낳은 아들 중 장자였던 '양녕대군'은 1404년 왕세자로 책봉됩니다. 하지만 워낙 성품이 자유분방하고, 풍류 즐기기를 좋아하여 아버지인 태종과 유학자들에게 걱정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양녕대군에게 군왕으로서의 덕행을 닦으라고 몇 번씩이나 타이르며 벌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 개선된 바가 없어 조정 관원들의 요청대로 양녕대군을 폐위시키게 됩니다.

 

 

◆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책봉되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존경하는 충녕대군(세종)은 어릴 때부터 명석했고, 책을 좋아하며 미술과 음악, 수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빛냈다고 알려졌습니다. 1418년 6월 양녕대군이 폐위된 이후에는 충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책봉되는데요. 이것은 태종 생전의 일이었습니다. 

 

이어 같은 해, 8월 22세 나이로 왕위에 즉위한 초기에는 태종이 상왕이 되어 군권, 인사권 등 여러 권리를 행사했는데요. 4년 동안 실권을 쥐던 태종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세종은 본격적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세종이 이룬 업적들

세종 2년 1420년에 집현전 확충을 시작으로 학문과 연구, 각 행정 체제 확립, 여러 분야에 관한 저서를 하게 하고 활자판짜기 개량, 혼천의, 간의, 자격루가 만들어졌습니다. 해시계, 측우기, 화전, 화포, 경제적인 정책 제도 마련, 농업 발전, 의료기관 정비, 악기 제작과 악보 창안, 역사/종교계 발전, 훈민정음 반포 등 많은 업적이 이뤄지기도 했죠.

 

 

◆ 태종 이방원의 국가 제도 정비와 왕권 강화를 위한 피의 숙청들

이방원은 국가 운영을 위하여 기틀을 잡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걸림돌이 될 만한 세력들을 숙청하였습니다. 태조 대의 무장이었으며, 태종과 혼인 관계로 영의정의 자리까지 지내기도 한 '이거이'부터 시작이었죠. 사병 혁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되었고, 또한 태종을 가까이서 도왔던 원경왕후 민씨 집안이 그다음 제거 대상이 되었습니다. 

 

태종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운 집안이었기에 권력은 매우 높았는데요. 하지만 세자를 끼고 권력 행사를 한다는 이유로 집안 4형제가 숙청되었지요. 세종이 왕위에 오를 때도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비롯한 외척 세력이 제거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종이 즉위하기까지 왕권 강화에 방해되는 이들을 모두 없애 마음껏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게끔 한 것입니다.

 

 

 

이방원아들들에 관하여 궁금하셨던 분들을 위해 핵심 내용을 요약해 보았는데요. 드라마를 보거나 혹은 역사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유익한 내용으로 찾아뵐게요.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